[비영리스타트업 4기 후속지원 단체 소개③ 청년채움] “‘틈만나면’ 동네에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생길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024.02.27<2023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사업 4기 후속지원> 끝을 맞이하며 참여 단체별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정기 지원 8개월, 후속지원 7개월의 긴 여정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단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청년채움’입니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2005년부터 공연하여 누적 공연횟수 5,000회를 넘기고 100만명 이상이 관람한 뮤지컬 <빨래>의 대표적인 넘버(노래) 제목입니다. 고향 강원도를 떠나 서울의 작은 동네에 살고 있는 27세 서점 직원 ‘서나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울에 사는 여러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소극장 뮤지컬이 20년 가까이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그만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때의 어려움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에서는 설레임과 기대감과 함께 힘든 점도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낯선 곳에 머물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부담감 없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집 근처에 없다면 외로움이 커질지도 모릅니다. 원래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의 사람도, 혼밥이 일상화되다보면 식사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서울 구로를 기반으로 시작한 청년채움은 사회초년생 등 주변에 정을 나눌 곳이 많지 않은 청년들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부담과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쌓다 보면, 청년들이 고립과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렇게 발견한 틈에 내용들을 채우다 보면, 자연스레 지역에서 필요한 활동과 연결되리라 믿습니다.
▼ 청년채움 운영진 단체 사진
청년채움의 모태가 된 구로청년채움의 첫 시작은 2020년 8월, 살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의미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기를 희망하는 대학교 친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이학준 대표를 비롯한 친구들이 살고 있는 구로에서 작당이 시작되었지요. 구로구청에서 진행한 ‘일자리 정책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지역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웹진과 영상을 만들고, 미얀마에서 진행된 민주화 운동을 조망하는 사진전도 진행하였으며, 동네의 다양한 특징을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도 만들었습니다. 2021년 말부터는 ‘구롱살롱’ 이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로 집합금지 명령이 있었던 기간엔 온라인을 중심으로, 그 후에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차별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지역에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밤거리를 지나다니는데 가로등 같은 것들이 없어서 너무 어둡다’와 같은 의견이 나와서 ‘구로구 의회’에 관련된 정책제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년 가까이 ‘구롱살롱’을 기수별로 진행하면서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일상에서 관심있는 주제를 가지고, 때로는 번아웃 등 청년들이 경험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모임을 하였지요.
“구로청년채움은 느슨한 연대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 왔어요. 물론 관심있는 분야와 연계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대학생들을 기반으로 한 단체이다 보니 안정성이 좀 불안하여, 2022년 정도부터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그 때, 다음세대재단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만나게 되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처음 선정되었을 때는 ‘비영리단체 DB 구축’ 등, 다른 주제로 지원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합격 후 다음세대재단과 이야기를 나누며 청년채움이 진짜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았습니다. 기존에 했던 활동을 돌아보면서 구롱살롱과 비슷한 느낌의 소셜살롱을 다른 지역에서도 확장하여 진행해 보기로 했어요.
청년채움은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느슨한 연대를 바탕으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꾸준히 진행되면서도 편하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모임, 서울의 중심지로 나가지 않고 가까운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가볍게 나가도 만날 수 있는 모임으로 소셜살롱을 꾸준히 진행하기로 한 거죠.
“구롱살롱을 하면서 고립 척도라거나 번아웃 지수 등 외로움과 관련된 내용들을 측정해보았는데,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을 비교해보니 외로움과 고립감이 현저히 줄어든 결과가 나왔어요. 만족도 설문에도 90% 이상이 좋은 평가를 주셔서, 참여자들이 좋아하고 효과도 있으면 계속해야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메인 아이템으로 꾸준히 진행하고자 했어요.”
여기서 궁금증도 듭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는 방법도 있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 모집하는 청년모임도 있고, 온라인에서 취향 기반 커뮤니티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도 아닌 서울에서라면 더욱 그렇지요. 그럼에도 별도로 구로에서 소셜살롱을 만들고,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친구들과 만나면 현실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거나, 지금까지 쌓아왔던 관계의 분위기상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요. 구청 등에서 진행하는 모임은 얼마 안 있다가 사라져서 연속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고요. 강남/홍대 등에서 진행하는 취향 기반 모임들의 경우, 대부분 홍보 멘트들이 현실적인 목적 -인맥을 얻는다거나, 유명한 사람을 만난다거나- 중심처럼 보였고요. 무엇보다 모임을 위해 굳이 어딘가를 갈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동네에서 만나면서, 즐겁게 웃고 떠들면서 회복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타 지역에서 왔기에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해진 동네 구로에서 시작하여 좋은 피드백을 얻고, 다른 지역에서도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3년 하반기, ‘틈과 틈이 만나서 서로를 채운다”는 의미를 지닌 ’틈만 나면‘이라는 이름으로 소셜살롱을 리브랜딩하며 구로/노원/성북/오류 네 개의 지역으로 확장하였습니다.
▼ ‘틈만나면’ 모임 사진(출처: 틈만나면 인스타그램 @teum_youth)
‘틈만 나면’ 참여자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 나이의 직장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서울로 올라왔거나, 서울에서 태어났더라도 현재는 부모님(본가)와는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사회초년생들이 중심을 이루다 보니 힘든 점 등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 좀 더 많다고 느껴졌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 출신인 분들이 많다 보니 유대감을 쌓기도 좀 더 좋았고요.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니 참여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자 사람책 나눔, 그리기, 친환경제품 만들기, 바자회 등이 담긴 12주 커리큘럼을 짜고 모집안내를 하였습니다. 공식 모임 기간이 끝난 후에도 동일한 시간에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싶어하시는 참여자 분들이 많아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데요. 친근해지니 모임에 친구와 직장 동료를 데려오기도 하고, 지역의 유용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각자 하고 싶은 내용을 모임에 제안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의 특성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요.
“저희는 못 오면 ‘오늘은 일이 늦게 끝나서 못 가요’, ‘상사 분이 갑자기 일을 시키셔서 30분 정도 늦을 듯 해요’, 이렇게 이야기하셔도 되거든요. 여러 회차 중 중간에 오셔도 괜찮고요.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굳이 멀리 가거나 참석비를 지출할 필요 없이, 산책 가듯이 부담없이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저희 모임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밥과 다과를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거든요.”
초창기 참여자들이 이 모임을 편안히 여기며 지인들을 불러오는 모습이나 긍정적인 피드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틈만 나면’은 동네에 거주하는 참여자들이 외로움을 벗어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청년채움이 많이 알려지는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을 기반으로,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태양계에 비유하여 저희를 이야기한다면, ‘틈만나면’을 태양으로 삼고, 여러 가지 사업들을 이제 행성으로 삼아서 만들어 보려고 해요.”
‘틈만나면’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청년들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나 지역 기관 또는 지역 상권과 연계된 프로그램처럼 지역의 특색과 어울리는 다양한 활동으로 연결되고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채움의 모태가 되었던 구로만 봐도 곳곳에 특색있는 장소들이 있어요. 그런 장소를 연결해서 ‘틈만 나면’을 진행할 수 있겠지요.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미처 몰랐던 동네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고 알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운영진은 장기적으로 모든 동네에 ‘틈만 나면’이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틈만 나면’이 어느 동네든지 청년들의 고립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로 자리잡기를, 운영진이 굳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모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동네로 이사를 가더라도, 낯선 지역에 대한 두려움 없이 ‘틈만 나면’에서 느꼈던 소속감과 따뜻함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이를 위해서 청년채움도 점차 단단해져야 하기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사진과 함께하며 필요한 사업을 잘 수행하도록 재정적으로 독립할 방법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저 역시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경험해 보았기에 고립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틈만 나면’이 아주 대단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고립 예방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래요. 동네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기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바로 제가 경험했으니까요. 집에 와도 딱히 만날 사람이 없어서 방에만 머물다가 더 심한 우울과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청년들에게 일정 부분 도움만 될 수 있다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동네의 매력을 알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회를 가진다면, 저희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운영진 중 한 명은 청년채움에 함께 하기 전에는 대부분 혼자서 식사를 하다보니 그냥 때운다는 느낌으로 대충 챙겨먹다가, ‘틈만 나면’에 함게 하며 행복하고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고 합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작은 만남과 행동이, 누군가의 삶에는 큰 변화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요. 청년채움의 활동을 통해 각자의 틈이 잘 채워지기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임과 관계들이 지역에 더 큰 활력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 청년채움이 만들어 갈 태양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평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